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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의 지리 개요, 역사, 섬

by 머니36000 2024. 2. 20.

에게해의 지리개요

에게해는 지중해의 일부를 구성하는 내해로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놓여있는 바다입니다. 북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본 지중해로 연결되고 위치는 대충 동 지중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북쪽은 트라키아, 동쪽은 이오니아, 남쪽은 크레타, 서쪽은 테살리아, 아티카, 펠로폰네소스와 접하는 바다이고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파도가 잔잔한 편이고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의 성지입니다. 보통 지중해 크루즈 여행은 이곳을 의미하며 인터넷에 나오는 아름다운 지중해 사진도 절반 이상은 에게해가 배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은 거대한 평야지대였으며 후기 빙하시대인 BC 16000여 년에는 에게해 대부분이 물이 많은 거대한 해안 평야였습니다.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기원전 8000여 년에도 이 지역은 많은 부분이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빙하시대가 지나고 기원전 4000여 년이 되어서야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에게해의 면적은 대략 214000평방 킬로메터이며 북동부 에게해 제도, 에비아 (고대의 에우보이아), 북부 스포라데스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살로니카 제도, 도데카니사 제도, 크레타  7개의 구역으로 분류됩니다. 여러 에게해 제도(혹은 열도)는 사실 본토에 뻗어있는 산맥의 연장인데 어떤 산맥은 히오스 섬까지 연결되며 에비아와 사모스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고 다른 산맥은 펠로폰네소스에서 크리티를 지나 로도스까지 이어져 에게해와 지중해를 구분해 줍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와 터키도 그렇듯 지진대의 정중앙을 지나기에 지진도 자주 발생합니다. 위에 언급한 잔잔한 해양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해서 바다 자체도 대륙붕처럼 상당히 얕은 곳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의외로 수심이 깊은 해역입니다. 평균 수심은 1500m, 가장 깊은 해역은 크레타 동쪽 해역으로 3543m까지 내려갑니다.

에게해의 역사

기원전 2000여 년에 키클라데스 문화라는 독특한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이 문화권은 극도로 추상화된 석상과 해양문화라는 특징을 갖는데 특히 산토리니섬의 아크로티리 유적과 크레타에서 발굴된 벽화는 당시의 풍요로운 해양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에게해는 그리스 문화권에 속하며 그리스인들의 내해로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남쪽의 크레타 섬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본격적 왕국인 미노스 문명이 등장하고 이후 미케네 문명에게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영웅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이 아들이 원정에서 사망한 줄 착각하여 절망감으로 바다에 투신하여 그 바다에 그의 이름을 붙여 에게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그리스 신화에 있는데 이 또한 미노스~미케네 시대 즈음에 만들어진 이야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트로이까지 에게해 문명에 포함시킨 지도도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청동기 시대의 붕괴와 함께 소멸하고 그리스와 크레타를 포함한 에게 해 전역, 바다 건너 히타이트까지 수백 년간 역사와 문자가 잊힐 정도의 암흑시대를 맞이합니다. 암흑기의 초기에 대규모의 지진과 가뭄이 있었고 북쪽에서 도리스인 등의 이민족들이 내려왔으며 미케네 문명이 붕괴되었습니다. 미케네와 크레타의 그리스계 유민들은 바다 민족이 되어 히타이트, 키프로스, 이집트, 가나안 등으로 떠났다고 추정되며 필리스티아 지역에 가장 많이 정착했다고 합니다. 암흑시대가 끝난 후 고대 그리스 문명이 회복되면서 철기 시대의 도시국가인 폴리스들이 에게 해에 등장하였고 이후 다시 그리스의 문화를 꽃피우다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지배를 거친 후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에게해의 아름다운 섬

에게해에는 섬이 무척 많은데, 작은 섬 몇 개를 제외하면 튀르키예 코앞에 있는 섬까지 전부 그리스 땅입니다. 한때는 그리스 본토까지 포함해 모두 오스만 제국 땅이었지만 제국이 차츰차츰 몰락하면서 19세기~20세기 초반에 그리스에 하나하나씩 다 털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로잔 조약에 따라 에게해의 섬은 튀르키예 영토의 코앞에 있는 것까지 죄다 그리스에 넘어갔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항복한 뒤 이스탄불에 진주한 연합군의 우두머리인 영국인 고등판무관이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을 지켜보다가 그리스 군이 튀르키예군에 져서 에게해로 밀려나자 궁지에 몰린 그리스 군을 구하고 전쟁이 확전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스탄불 부근의 동 트라키아 지역 아니면 에게해의 섬들 중 하나를 가지라고 제안하자 튀르키예 정부가 이스탄불 주변 땅을 가지겠다고 선택해서 에게해가 그리스 땅이 된 것입니다. 튀르키예는 독일 편을 든 덕분에 영국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고 지금도 이 지역의 영해 범위를 놓고 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다고 합니다. 2017년에 에게해의 작은 무인도 이미아(튀르키예명 카르다크) 섬을 둘러싸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로잔 조약에 따라 이곳은 그리스가 점유하고 있으나 튀르키예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지난번 산토리니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에게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