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개요
발트해는 북유럽과 중앙유럽(또는 북유럽, 중앙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위치한 바다로 북유럽과 중앙유럽(혹은 북유럽,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경계를 이루기도 합니다. 발트해의 북쪽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및 동북쪽의 핀란드, 동쪽에는 러시아와 발트 3국이 있으며 남쪽에는 폴란드, 독일 등 유럽 본토가 있습니다. 서쪽에는 스웨덴과 덴마크가 있으며 이 바다에서 외해로 나가는 해로는 서쪽의 두 해협(스카게라크 해협, 카테가트 해협)과 독일의 킬 운하가 있습니다. 이 바다에 접해 있는 국가는 무려 9개나 됨으로 남유럽의 지중해에 이어 북유럽의 또 다른 지중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 주가 바로 이 바다에 접해 있습니다. 발트해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해협을 통해 북해로 연결됩니다.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수에비족의 바다란 의미에서 수에비 해(Mare Suebicum)이라고 불렀습니다. 발트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건 11세기로 독일의 역사가이자 신부인 아담 폰 브레멘이 자신의 저술에서 발트해(Mare Balticum)를 언급하였습니다. 발트(Balt)라는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게르만어파의 단어 띠(belt)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인도유럽조어에서 '흰'(white)를 뜻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발트해의 서쪽 연안에 위치한 나라들은 이 바다를 동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동쪽 연안의 에스토니아는 이 바다를 서해라 부릅니다. 그러나 동북쪽 연안에 위치한 핀란드는 이 바다를 서해나 남해라고 해야 이치에 맞지만 스웨덴의 지배를 받는 동안 영향을 받아 스웨덴처럼 동해라고 부릅니다. 지중해와 정반대로 대다수 인접국들은 겨울이 매우 추운 냉대 습윤 기후를 띠며 이러한 경향은 보트니아 만 이북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편이고 강수량은 대체로 1년 내내 균등한 편입니다.
발트해의 역사
중세 초기 바이킹들이 온갖 평지풍파를 다 일으키고 다니면서도 동시에 무역과 남쪽에서 온 선교 활동 등을 통해 나머지 유럽, 지중해 세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발트해 연안의 문명들도 광의 서구 문명의 흐름에 편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크 왕국, 영국 제도의 여러 켈트, 라틴화 된 선주민들이나 동방의 동로마 제국 같은 남부의 고전 문명을 계승한 정주 사회들은 바이킹과 싸우면 싸우는 만큼 문화적인 영향력도 강하게 끼치며 결국 11세기쯤 되면 형식적으로나마 각각 서유럽, 그리스 세계와 국교랑 문자를 공유하는 중세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왕국과 러시아계 제국들이 생겨났습니다. 반면 남쪽의 현대 발트 3국들이 차지한 지방과 핀란드 일대는 이런 문명 전파 과정의 거점이었던 영국의 각 수도원 도시들, 파리, 이탈리아 반도, 콘스탄티노플 등 어디에서 보나 위치상으로 영 멀리 떨어져 있고 딱히 필수적인 이권이나 자원이 있는 지방도 아니어서 스칸디나비아나 러시아 쪽에 비해서도 기독교화, 제도적 (동서) 로마화 과정이 늦었습니다. 특히 이 지방의 고유 열강 세력으로 떠오른 중세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무려 15세기 남유럽인 들은 르네상스가 궤도에 진입할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했을 만큼 기독교 이전 문명이 오래 유지되었으며 핀란드의 사미족들은 19세기까지 고유의 종교를 유지하였습니다. 상술한 과정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발트해 연안 사회들에도 중세적 시스템이 정착되어 가면서 경제적으로 떠오른 건 북독일 일대의 한자 동맹 소속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계 상업 자유시들이었다. 함부르크, 뤼베크, 브레멘, 단치히 등 여러 발트해 연안 독일계 도시 공화정들은 스칸디나비아의 산림, 동유럽의 곡물이나 모피 등을 사고팔며 지중해를 통한 동방 무역만큼 중요한 경제적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었고 북해 쪽으로 건너면 나오는 저지대 국가의 해안 도시들 또한 이렇게 발트해 항로를 따라 나온 상품들을 나머지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 왕국, 이베리아 반도 등에 공급하며 큰 부를 쌓았습니다. 중세 초기 문화, 종교적으로 큰 연관을 맺었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국 같은 영국 열도나 다른 서유럽의 큰 봉건 왕국들은 더 가까운 정치적 문제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발트해 시장에 직접 뛰어들지 못했고 중세 내내 이런 소규모 상업 도시국가들의 발트해 패권은 지속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정학적, 경제적 독립성도 16세기 근세에 들어 덴마크, 스웨덴 같은 발트해 인근 국가들이 관료제 등을 도입하며 근세적 중앙 집권화를 이루면서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발트해의 특징
발트해는 기온이 낮고 주변 육지에서 발트 해역으로 향하는 200개에 달하는 하천에서 담수가 많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바닷물이 별로 짜지 않습니다. 발트해의 중앙 지역의 표층수의 염도는 약 0.3~0.6%인데 일반적인 바닷물의 염도인 3.5%과 비교해 보면 대단히 낮습니다. 심지어 생리식염수의 염도보다도 낮으므로 한겨울에는 대다수의 항구가 얼어버립니다. 발트해 제일 북쪽 보트니아 만의 경우에는 담수에서 사는 생물들이 바다에 살고 5개월간은 연안이 결빙됩니다. 물론 북해 쪽에서 들어오는 바닷물이 있으므로 깊이가 깊어질수록,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닷물은 점점 짜지게 되며 염도의 차이에 따라 염수와 담수가 층을 이룹니다. 그래서 발트해 바닷물을 사람이 그대로 마시면 보통 바닷물처럼 탈수 증상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몸에 수분을 공급하여 조난상황에도 바닷물을 마셔 생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닷물은 단순한 소금물이 아니라 인체에 나쁜 온갖 잡다한 성분이 들어있으므로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유럽 여행을 가면서 막 퍼마셔 보는 것은 몸에 이롭지 않습니다. 이 짜지 않은 바닷물 덕분에 스웨덴의 난파선 바사 호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악취로 유명한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도 염도가 낮은 발트해의 물로 청어를 염장하려다가 발효되어 버린 데서 기원한 음식립니다. 발트해에는 유독 호박이 많이 발견되며 고대 발트인들은 이것이 발트해의 여신인 유라테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이상으로 발트해의 개요와 특징 등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